[카게오이] Let the story tell (1)
2019. 9. 1. 22:09
몇 달 째 변함없는 베스트셀러 목록은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연애를 다룬 흔한 내용이었지만, 상반된 제목을 가진 두 권의 책이 한자리에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경험담을 쓴 듯,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이야기를 다룬 두 책은 다른 작가가 썼음에도 제목이 비슷해, 동시에 사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따라서 제가 눈길을 끊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오이카와는 합리화했다. 자신의 책과 단 한 단어만이 다른 제목의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베스트셀러에 함께 오른 것을 보고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오죽했으면 책을 전달하러 온 담당자가 컴퓨터를 향한 제 표정을 보며 싫어하는 작가가 있냐고 물어봤을까. 물론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제 감정을 굳이 다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받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오이카와는 하던 원고를 멈추고 담당자가 올려둔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비닐도 뜯지 않은 책은 오이카와가 받았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작가들의 표현 방식이라던가, 작가의 주변 환경을 유추하는 것은 오이카와의 오래된 버릇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빠짐없이 읽었지만, 이 책만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사랑에 대처하는 방법』
- 大翔
작가의 필명을 처음 본 순간, 헤어졌던 연인을 떠올렸다. ‘사랑’에 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 어둡고 칙칙한―지극히 오이카와 혼자만의 생각이다.― 책 표지에 있는, 올곧은 성격을 드러내듯 정갈히 적힌 히로토(大翔)라는 글자를 쓸어 내렸다.
아무 걱정도 없을, 꿈과 희망만 가득 찼던 그때. 오이카와가 연인에게 지어줬던 필명이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기에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히로토’가 자신이 애인에게 직접 지어줬던 필명임을 잊을 만큼 머리가 나쁘지도 않았다. 그 녀석이 책을 낸다면 그때의 필명을 그대로 사용할 거라는 생각을 어렴풋하기는 했지만, 그 이름을 달고 처음 낸 책으로 베스트셀러까지 오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뿐이다.
처음 한 권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따낸 작가에게 오이카와는 선배 작가로서도, 전 애인으로서도 축하해주지 못했다. 헤어진 이후로 연락을 끊고 살았다는 이유 뿐만은 아니었다. ‘뒤끝은 없이’가 오이카와의 연애 모토였기에, 그 이유뿐이라면 오히려 축하한다는 문자를 남겨줄 성정이었다.
포장조차 뜯지 못한 책을 집어 들었다. 포장이라도 없었다면 열기 쉬웠을까. 오죽 열기 싫었는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 괜히 책을 앞뒤로 뒤집으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장들을 훑었다. 그러다 결국 오늘도, 언제나처럼 포장을 뜯지 못하고 책상 위에 내려두었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름도 없던 작가가 처음 낸 책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온갖 포털 사이트에는 그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었다.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오이카와는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함께했을 때도 저보다 위로 올라갈 거로 예상하긴 했지만, 이제야 첫 작을 낸 주제에 벌써 저와 나란히 하다니. 역시 천재는 짜증났다.
타자 소리가 멈춰 조용해진 방에 일정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오이카와는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겨우 멈췄다.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들어온 사람은 같이 작업하는 담당자 ‘오토나시 유리’였다. 하나에만 집중하는 성격이라 책을 쓸 때는 기본적인 일들도 챙기지 못해서, 언젠가 부터는 마감 날짜가 가까워지면 오이카와의 작업실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름(오토나시; 音無)처럼 마냥 조용한 편은 아니었지만,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는 혼자 작업하기를 선호하는 오이카와를 존중해, 사적인 공간도 따로 만드는 세심함을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 이번 주에 인터뷰 있는 거 아시죠?”
“네. 걱정 말아요.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달력에 체크까지 해뒀는걸요~. 그렇잖아도 그것 때문에 걱정이 많네요.”
“에이, 선생님은 실전에 강하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아직도 그 책 읽지 않으셨어요?”
여전히 포장된 채로 그대로인 책을 숨기기 위해 과장되게 달력을 들어 보였지만, 이미 오토나시의 눈은 책으로 향해 있었다. 원고가 덜 끝나서…. 말을 얼버무려봤으나 원고의 진척 상태를 뻔히 아는 오토나시에게는 통하지 않는 거짓말이다. 한숨을 내쉰 오토나시는 책을 집어 들어, 손을 멈춘 키보드 위로 올려두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일 말고 책을 읽으라는 소리였다. 그냥 넘어가는 것도 미덕인데. 제 신조까지 알고 있는 그녀의 철저함은 이럴 때는 곤혹이다.
“다른 책들은 다 읽으셨으면서! 진짜로 누가 보면 히로토 작가님 싫어하는 줄 알겠다니까요.”
“그게 아니라니까.”
“아, 혹시 소장하실 게 필요하신 거예요? 그럼 한 권 더 사다드릴…,”
“알았어요, 알았어! 오늘 읽을 테니까 걱정 말고 일 봐요. 솔직히 말해 요, 오토나시 씨. 인터뷰 때문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온 거죠?”
참견이 조금 많은 것만 빼면 완벽한데. 책을 읽지 않으면 끝까지 신경 쓸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이카와는 내심 심술을 부렸다. 그럼요~ 그러니까 잘 해주시라구요? 물론 오토나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현실 회피하는 것을 그만두고,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며 오토나시가 키보드 위에 놓은 책을 들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피해서 될 일도 아니다. 곱게 쌓여있는 포장을 조심스레 뜯어냈다. 마음과는 다르게 손쉽게 벗겨졌다.
제목에 적힌 ‘사랑’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오이카와와 사귀었을 때의 히로토 작가, 그러니까 전 애인이었던 카게야마는 사랑에 서툰 사람이었다. 애초에 저가 먼저 좋아해서 고백한 것도 처음이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이 이야기를 들은 오이카와는 자랑하는 거냐며 인상 쓰기도 했다. 그가 어떠한 의도로 말하는지 알면서도.― 본격적인 연애가 처음이었던 카게야마는 제 감정에만 집중하느라 오이카와의 감정을 신경 쓰질 못했고, 오이카와는 그런 카게야마를 버티지 못했다.
『사랑에 대처하는 방법』
카게야마는 책을 통해 또다시 제 감정을 전하고 싶은 걸까. 작가 히로토가 카게야마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제가 지어주었던 한자까지 똑같은 것을 보고 오이카와는 히로토가 그임을 확신했다. 大翔. 높이 나아가라는 의미에서 오이카와와 함께 지었던 필명이다. 글을 몇 번 써봤던 오이카와와는 달리, 카게야마는 글이라고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필명이 없었고, 후에는 오이카와 씨가 지어 달라며 수줍게 말했다.
‘못 지어줄 것도 없지. 분명 토비오 센스라면 꽝일 게 분명하니까 특별히 오이카와 씨가 지어줄게! 음…, 히로토(大翔). 오, 좋다. 히로토로 하자.’
‘大… 翔……. 이렇게 쓰는 거 맞나요?’
‘응. 높이 날아가라는 의미로 지어주는 거야. 물론 오이카와 씨보다 높이 가면 화낼 거지만?’
‘와. 어, 그럼 오이카와 씨 필명은 뭔가요?’
‘이츠키(樹). 아, 토비오쨩, 잇쨩이라고 불러 볼래?’
필명을 받자마자 카게야마는 처음 오이카와를 만나 존경하는 선배였다고 말했던 순간처럼 순수하게 기뻐해주었다. 단번에 나왔다면 더 멋있었겠지만, 사실 카게야마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생각해둔 필명이었다. 그가 받아줄지, 혹은 필요할지조차 몰랐지만, 오이카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카게야마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으며 기왕이면 글을 쓰는 것과 관련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아프게 돌아올 줄 알았다면 지어주지 않았을 거였다.
카게야마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말을 더듬으며 됐다는 말만 반복했다. ‘잇쨩’을 해보라는 말은 카게야마가 못할 것을 예상하고 던진 농담이었는데, 알아온 내내 놀림을 당했으면서도 카게야마는 여전히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오이카와는 종종 필명을 이용해 자신을 잇쨩이라 표현했고, 그것이 오이카와의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는 이유로 질투했던 카게야마 역시 필명에 관련된 추억 중 하나다. 잠깐은 잊고 있었지만, 얽힌 추억들이 있기에 필명을 모른다는 게 더 이상했다.
애써 잊고 있던 기억들은 이때다 싶은 것처럼 물밀듯이 쏟아졌다. 오이카와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책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제목은 ‘사랑’에 관련된 것이면서 표지를 이렇게 칙칙한 색을 쓰다니. 센스는 재능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책만 잘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카게야마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오토나시 씨, 오늘은 날이 아닌 거 같은데. 생각한 대로 내뱉었다가는 무슨 말이 날아올지 몰라, 오이카와는 하고 싶은 말들을 꾹 참고 책의 첫 표지를 열었다.
첫 데뷔를 보여주듯, 작가의 프로필을 적어두는 책날개에는 딱히 정보는 없었다. 카게야마를 연상시킬 만한 정보 몇 개와 필명으로 어렴풋이 ‘히로토’가 제 옛 연인임을 조심스레 예상할 뿐이다. 찜찜한 구석은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읽는 데에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 장에 적힌 문구를 보기 전까지는.
언제 볼지 모르는,
이제는 떠나간 그 사람에게 전합니다.
책을 열자마자 닫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도 읽지 않으면 오토나시가 얼마나 구박할지 몰라,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책에 저들의 연애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맛있게 먹었던 점심이 얹힐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 오토나시 씨 괜히 본 거 같아요. 말하고 싶었지만, 불평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꾹 참고는 겨우 다음 장을 열었다.
과연 뒤에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수렁이 덮쳐질까 두려웠다.
‣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을 전담하는 오토나시는 오이카와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첫날부터 잡다한 일까지 손을 댄 오토나시를 보고 오이카와는 미안한 기색을 띄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끔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일 할 때의 오이카와는 다른 곳에 집중하질 못해서 청소도 제때 하지 않았다.
그대로 방치하는 것보단 내가 조금 고생하는 게 낫지. 물론 그에 상응하는 월급이 돌아오기에 군말 없이 하는 일이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라서 일까. 월급은 많은 일을 감수하면서도 아쉬운 소리 없을 만한 금액이었다.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오이카와가 경우 없는 상사는 아니었기에 더 붙어있는 거기도 했다. 당장 제 주변만 봐도 상사 때문에 직장을 때려치우는 친구가 더러 있었으니까. 성격이 마냥 착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착하다 나쁘다, 로는 정의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대체로 유하게 넘어가거나, 싫은 일이 있다 해도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 아무 탈 없이 넘어가곤 했다.
새로운 마감에 인터뷰까지. 아무래도 신경 쓸 일이 많아져서인지, 오이카와의 방은 어김없이 정신 사나웠다. 책상에는 개인적인 자료들이 있을지도 몰라 크게 건드리진 않고 방만 대충 정리하는 중에, 우연히 책상 위에 놓인 책으로 시선이 향했다. 어제 나가기 전 읽으라고 올려둔 히로토 작가의 책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일하면서 오이카와가 예민하게 반응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온 책을 보자마자, 정확히는 히로토 작가의 필명을 보자마자 표정을 급격하게 굳혔다. 오이카와는 제 주변에서도 표정 관리를 잘하는 축에 속했으니,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히로토가 뭐길래. 궁금했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지 못 하는 혼자만의 억측은 해가 되기 십상이라, 일찌감치 그만 두는 편이 좋으니 호기심으로만 삼켰다.
그나마 어제 방을 나갈 때와는 다르게 책은 포장이 찢긴 채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권유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읽기 싫어했으면서 다행히 읽기는 한 모양이다. 일때문도 있지만, 읽지 않고 있다 보면 결국 신경 쓸 오이카와를 위해서 권유하기는 했어도 눈에 띄게 싫어하는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신경 쓰면 또 그것대로 불편하다고 할 사람이었으나,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책을 들어 앞뒤로 훑어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참을 살펴보다, 책갈피가 후기 페이지에 꽂혀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오이카와가 책갈피를 잘 쓰는 편이기는 했지만, 책을 다 읽었으면 책갈피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후기에 인상 깊었던 문구라도 있던 걸까. 궁금함에 후기가 있는 페이지를 펼쳐 봐도 다른 작가들보다 간결할 뿐, 흔해 빠진 후기에 불과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많았지만, 오토나시는 조용히 있기로 했다. 어쩐지 오이카와는 히로토 작가와 관련된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토나시는 후기에 꽂힌 책갈피를 그대로 두고, 책은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오토나시 씨? 안에 있어요?”
청소도 다 마치지 못했는데.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계를 확인했다. 평소라면 밖에서 그를 맞이할 시간이었지만, 책에 정신이 쏠려 그랬을까. 오이카와가 출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덜 치우기는 했어도 대충은 정리된 것 같아서 작업실 문을 열었다. 잘못한 일을 한 것도 아니건만, 괜히 마음에 걸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나저나 오토나시 씨, 웬일로 늦었어요? 늦잠 잤나? 참 오토나시 씨 커피는 밖에다 두었어요.”
다행히 오이카와는 어제 나갈 때와는 다르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억지로 꾸민 듯 보이지도 않았다. 안으로 들어와 의자 위에 가방을 올려놓으며 사온 커피로 입을 한번 축이고는 끊임없이 말을 이었다.
오토나시는 오이카와가 이럴 때마다, 그가 자신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을 잊고는 했다. 특히 그의 훤칠한 외모와 세련된 패션 감각은 20대 후반으로도 보이질 않게 했다. 잘해야 20대 초반 정도. 자신의 외모적 장점을 활용할 줄 아는 성격에는 정말 탁월한 외모다. 외모뿐만 아니라, 말을 많이 함으로서 분위기를 풀면서 상대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도 오이카와가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단점은 한번 터지면 끝날 줄 모르는 입이라서, 오토나시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 책 다 읽으신 것 같던데. 어떠셨어요?”
“글쎄요…. 읽질 않아서 모르겠네요.”
“에이, 책에 책갈피 꽂혀있는 거 봤는걸요.”
“책갈피는 그냥 아무데나 꽂아둔 건데?! 그리고 제가 그 녀석 책을 왜 읽겠어요.”
발뺌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만뒀어야 했다. 오이카와는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듯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건드리지 말아야할 부분을 건드린 듯했다.
그보다 지금 자신의 입으로 정보를 흘렸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역시나 생각했던 것처럼 오이카와는 히로토 작가를 아는 모양이다. 히로토 작가와 어떤 사이일지, 만나면 어떨지 등 순수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나가달라 시위하는 오이카와에 더 이상 물어보지는 못하고 작업실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다.
오토나시가 문을 닫고 나가자, 오이카와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그 녀석과 관련된 일엔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버릇도 고쳐야할 텐데. 덕분에 할 일도 많은데 생각이 많아져, 의욕이 나질 않았다.
물론 오토나시의 말처럼 책을 다 읽기는 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 사랑에 관한 책이면서 왜 이런 어두운 색의 표지를 썼을까 의아했던 것도, 내용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제목은 사랑인 주제에 이별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천재는 이럴 때도 센스가 있는 건지. 언젠가 센스 없다 생각했던 것도 철회해야할 것 같았다.
카게야마를 연상시키는 간단히 적힌 프로필을 대충 훑고 첫 장을 펼쳤다. 사랑에 대한 내용일 줄은 알았지만, 그것이 저들의 연애를 다룰 거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별이 주된 내용이라, 읽는 내내 책을 몇 번이나 닫을 뻔한 것도 간신히 참고 읽었다. 마지막에 쓰인 후기마저도 오이카와가 기억하고 있는 카게야마다워서, 읽기 전부터 올라왔던 체기가 가시질 않았다.
카게야마는 무슨 생각으로 저와의 이별에 대해 다룬 걸까. 사귀고 있을 때도 알기 어려웠던 연인의 마음을 헤어진 지금이라고 알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괜히 궁금했다.
의자에 기댔던 몸을 그대로 눈을 감으면 오래 전 기억 속에 묻어둔 옛 연인이 떠오른다.
헤어진 이유는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작업실에서 함께 일하기는 했어도,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밖에서 하는 일이 많아져 마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는, 점차 연락하는 횟수도 뜸해져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만남을 이어가던 연애는 오이카와가 작업실을 옮기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 탓에 대부분이 그러하듯 자연스러운 헤어짐이라고 생각한 오이카와와는 달리, 카게야마에게는 조금 뜬금없이 찾아온 이별이었던 모양이다. 왜 헤어지는 거냐고 물어오는 연락에도 넌 잘못 없어. 라는 말과 함께 미련 없이 끊었다. 제가 생각해도 매정하긴 했지만, 이제 와서 구구절절 설명할 힘도 없었다.
눈을 뜨고 의자에서 몸을 떼어낸 오이카와는 어제 책갈피를 끼워둔 곳을 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라도, 자신을 놓지 마세요.
책 후기 페이지의 맨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말이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카게야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오이카와는 책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불편했던 속을 결국 게워내고야 말았다.
다시 한 번, 볼지는 모르는, 떠나간 그 사람에게 전합니다.
사랑하고, 죄송했습니다.
부제: 예상치 못했던 이별.
책은 흔한 이별을 다룬 내용이었지만, 작가가 느꼈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덕분에 이별한 연인을 달래주는 기분을 들게 했다.
나만 빼고 말이지. 오이카와는 자조하며 책갈피를 빼지 않고 책을 덮었다. 보통의 책과는 다르게, 끝에 적혀 있는 부제는 카게야마의 감정을 더 극대화시켰다. 제가 볼지 안 볼지 모르는데도 저를 향한 애절한 감정 표현을 보며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집요함에 고개를 저었다. 사귀면서도 가장 불편했던 건 카게야마의 직구 방식이었다. 오늘 제대로 맞았네.
아무래도 이제 곧, 소설 작가로 정식 데뷔할 카게야마를 절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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