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이] 안식처
2017. 11. 17. 00:00* 쿠로오 테츠로 생일 합작
* 조직 느와르 AU 인 듯 아닌 듯
날씨의 영향인지 집 내부의 분위기도 덩달아 을씨년스럽다. 마음 편히 쉬려고 왔으나 그 분위기에 덩달아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날씨도 날씨지만, 어쩌면 분위기를 띄우는‘그 녀석’을 못 봐서 더 그럴 수도 있었다. 조직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 보스의 애정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애정을 밀어내는 남자. 조직에 꽤 오랜 시간을 몸 담그고 있는 쿠로오조차, 오이카와 토오루는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이카와에 대해 쿠로오가 딱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사실은, 그가 보스의 눈에 들어있다는 것뿐이다. 오이카와의 무엇이 끌리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보스는 언제나 오이카와에게 광적일 정도의 집착을 보였다. 집 안에서는 항상 자신의 옆에만 있게 했고, 자신이 없을 때는 오이카와 옆에 꼭 누군가를 붙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비록 그것이 오이카와의 신변 때문인지, 혹은 그의 도주를 염려해서인지는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지만. 집착적인 보스의 옆에 있는 것이 싫은 탓일까, 오이카와는 온갖 제약을 받고 있으면서도 집에 있기보다는 외출하기를 원했다. 억압을 받는 것은 안이든 밖이든 마찬가지이니, 적어도 눈 밖에 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에 따른 귀찮은 일은 다 아랫것들의 몫이었지만, 아쉽게도 오이카와에게 그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어제부터 부재중인 오이카와 덕분에, 혼자가 된 쿠로오는 휴가를 받아도 곧장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예고 없이 내리는 비에 결국은 오늘 같은 날 집에서 처량하게 혼자 있어야 했다. 적어도 오이카와라도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 텐데. 오이카와가 부른다고 얌전히 올 사람도 아니었기에 쿠로오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혼자 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띵동- 혼자 살게 된 이후 저를 찾아올 사람도 몇 없는 데다가 있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연락하고 찾아왔기 때문에, 울린 적 없던 초인종 소리가 낯설기만 하다. 누군가가 온다 해도 조직원들뿐인데, 그들이 휴일인 저를 굳이 데리러 올 이유는 없었다. 급한 일이 생겼으면 찾아오는 편보다는 연락을 취했을 텐데. 그렇다고 이 비 오는 날 판매원이 오지도 않을 거고. 혼자서 여러 생각을 하는 바람에 시간이 꽤 지났는지 초인종 소리가 여러 번 반복된다. 거 누군진 몰라도 성질 한 번 급하네.
네, 네. 나갑니다. 문밖에 있는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하면서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인영에 쿠로오의 눈이 커졌다.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을 본 탓인지 몸이 굳었다. 안 된 다기보단 믿기지 않았달까.
“너무하네. 나 젖었는데.”
“….”
“안 들여 보내줄 거야?”
네가 왜? 그의 성격상 며칠은 더 얼굴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심지어 제집에서 마주했다는 사실에, 친절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누군가 들었다면 인정할 수 없다며 욕을 내뱉을 말이지만― 쿠로오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몇 분을 서 있었다.
사람 세워두고 뭐 하는 건데? 가뜩이나 비 맞아서 기분도 나쁜데 들여 보내주질 않고 있으니, 그의 말투에는 점점 짜증이 섞여져 간다. 마냥 처량해 보이다가도 괜스레 마음이 동하는 것은 쏟아지는 비 때문에 감성적으로 변해서, 라고 속으로 혼자 변명했다. 많이 젖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걱정되기도 하고 이 상태로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저 성질머리로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에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몸을 틀어 오이카와를 들여보냈다. 혹시나 다른 사람인가 싶어 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제집인 양 들어가는 모양새는 완벽하게 오이카와다.
“너 여기로 와도 돼? 아니, 그나저나 왜 이렇게 젖었어.”
“옆에 있던 놈들 떼어내느라~.”
그보다 수건 없어? 밖에서 샤워할 마음은 없으니까 몸이라도 닦게 새 수건이라도 줘 봐. 남의 집에서 보이는 태도치고는 상당히 뻔뻔했지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쿠로오는 신경 쓰지 않고 오이카와에게 수건을 던졌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만큼, 어떤 것이든 제 몸에 묻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이었으니 비 맞는 게 오죽 싫을까. 그런 주제에 왜 도망쳐서 온 건지. 좋기는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한소리 하고 싶었으나 분명 잔소리라며 듣지도 않을 게 뻔해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가 몸을 닦고 말리는 것을 기다리던 쿠로오는 따뜻한 코코아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향했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니 기분 좀 풀리겠지. 아니나 다를까 받자마자 기분 좋게 웃으며 쉬지 않고 들이킨다. 야, 야! 안 뜨거워?! …그렇잖아도 방금 혀를 댔습니다. 눈에 눈물을 찔끔 머금고 이야기하는 오이카와에 못 말린다는 듯 웃어 보였다. 쿠로쨩! 그만 웃어 줄래!?
“알았어, 알았어. 다 닦았으면 앉아서 천천히 마셔. 아무튼. 적어도 내일까지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웬일이래?”
다 닦은 수건은 달라는 의미로 손을 내밀며 말을 걸었지만 오이카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왜? 이상해서 오이카와를 쳐다봤지만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눈빛과 던져진 수건이다. 야! 네 힘으로 던지면 수건도 무기가 되거든?! 날아오는 수건을 가까스로 잡은 쿠로오가 소리쳤지만 오이카와는 잘못 없다는 듯 더 큰 목소리로 받아쳤다.
“쿠로쨩이 눈치가 없으니까 그러지!”
“? 내가 뭐?
진심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는 쿠로오에, 매섭게 째려보던 오이카와는 결국 표정을 풀었다. 오이카와, 너 지금 표정 엄청 바보 같아. 이건 다 쿠로쨩이 바보 같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뭔데. 아무리 조직원들의 감시가 싫다 해도 매정하게 버려둘 만큼 성격이 못되지도 않은 데다가 그들의 후일이 걱정되어 웬만해서는 그들을 따돌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 집에 온 이유가 뭐지? 쿠로오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쿠로쨩 오늘 생일이잖아! 생! 일!”
아. 맞다. 오이카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일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지만, 잊고 지냈던 몇 친구 놈들이 이맘때쯤 되면 서로의 생사를 핑계로 연락해오는 덕분에 제 생일임을 상기했었다. 어찌 됐든 제가 태어난 기념적인 날이었으니 함께 보내고 싶었던 마음으로 오이카와를 찾고 있었으나 이미 나갔다는 소식에 혼자 쓸쓸히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는데,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뭐야 까먹고 있었어? 쿠로쨩~ 오이카와 씨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얼씨구? 그러는 오이카와 씨야말로 내가 집에 없으면 어쩌려고 그랬대?”
“비 오는 날 외출하는 거 싫어하잖아. 휴가를 냈다는 쿠로쨩이 집에 있을 거라는 사실쯤은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지!”
뭐 얼마나 대단한 사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오이카와를 향해 새 옷을 건넸다. 지금 제 꼴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오이카와는 재잘 떠들 뿐이다. 채 마르지도 않은 옷이 딱 달라붙어, 제가 좋아하는 그의 몸선이 드러나 있는데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물론 오이카와도 제집에 사심 없이 오지는 않았을 테지만,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하는 짐승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쿠로오에게는 안타깝게도 옷을 건넨 순간부터 오이카와가 그 마음을 눈치챈 것 같지만.
“음흉한 쿠로쨩. 오이카와 씨 이러다가 잡아먹히는 거 아닌지 몰라~.”
“어울리지 않게 무슨. 자꾸 그럴 거면 내보낸다?”
“내보낸다니! 쿠로쨩 집이 내 집이고, 내 집이 쿠로쨩 집 아니었어? 우리 사이, 그런 사이잖아.”
“그럼. 보스는.”
“…그런 짓궂은 질문하는 사람하고는 하루 보내고 싶지 않은데. 오이카와 씨 갈까?”
거짓말로 한 말은 아닌 듯 표정을 굳히며 벌떡 일어나는 모습에, 쿠로오는 아차 싶어 빠르게 제 잘못을 인정하며 항복 모션을 취하곤 오이카와를 앉혔다. 사실 오이카와가 어떤 마음으로 보스의 옆에 있는지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건, 그래 추잡한 질투지. 사정을 다 알고 있다 해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제 옆에만 있기를 바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지 않을까.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알고 있어 내색은 안 했지만, 가끔 나오는, 오이카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어리광이었다.
“생일이라 어리광부리고 싶었나 봐. 기왕 온 거 조금만 자비를 베푸는 건 어때?”
“……오이카와 씨가 착하니까 참고 넘어가는 거야.”
뻔뻔하기 짝이 없는 말에도 그냥 웃어넘겼다. 그래야 오이카와 씨답지. 소파에 앉아 있는 오이카와의 다리에 누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끔한 얼굴은 역시나 제 취향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이기적인 듯하면서도 사실은 자상한 성격이나, 무신경을 가장한 배려, 저를 향한 마음. 그 무엇도 끌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저만의 생각이 아닐 거라는 사실 역시도.
“뭘 그렇게 빤히 봐? 오이카와 씨 뚫어지겠어~.”
“아, 아니야. 그런데 나 생각해서 온 건 좋은데. 오이카와 씨 쉬어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 쿠로쨩도 그렇고, 오이카와 씨도 그렇고. 이만한 안식처가 없잖아?”
눈치는 빨라 가지고. 제가 좋아하는 얼굴에, 제가 좋아하는 미소를 보이며 제가 좋아할 말을 한다. 오이카와의 어떤 매력에 보스가 빠져있는지 모른다 했지만, 사실 반은 거짓말이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저 역시 빠지고 있었으니까.
아침에만 해도 을씨년스럽기만 했던 집은 어느덧 오이카와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역시 그것도 싫지만은 않다. 아, 내 선물은? …쿠로쨩, 너무 뻔뻔한 거 아냐? 가늘게 눈을 찢으며 밉지 않게 쳐다보는 오이카와에도 눈을 피하지 않고 그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없어? 선물은 무슨! 오이카와 씨가 선물 아니겠어요? 그나저나 쿠로쨩 머리 무거운데 좀 일어나지? 계속해서 재촉하자 돌아오는 답도 역시 오이카와답다.
“그런데 쿠로쨩.”
“…….”
“둘이서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재미없는 대화만 할 거야?”
올려다보고 있는 쿠로오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던 오이카와가 씩 웃으며 입을 맞춰 온다.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챈 쿠로오 역시 웃으며 그에 응해준다. 아까 전 건네준 옷을 새로 입은 보람도 없이 쿠로오의 손이 오이카와의 옷으로 들어간다.
아닌 척했지만 쉬기 위해 온 집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오이카와의 등장은, 역시 그의 말처럼 선물이 분명했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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